애플, 메모리칩 중국산 사용 승인 요청
트럼프 행정부 상대 로비
美 의회 "중국 의존 키운다" 반발
중소업체 "메모리도 못 구한다"
사진=셔터스톡인공지능(AI) 기술이 촉발한 메모리 반도체 공급 부족에 따른 경영난이 애플과 같은 글로벌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 전자업체까지 전반적으로 번지고 있다. 애플은 공급난과 가격 급등을 견디다 못해 미국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중국산 메모리 칩 구매를 적극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애플과 달리 자금 여력과 공급망 네트워크가 부족한 중소 전자업체들은 생산 차질과 원가 급등으로 존폐의 기로에 놓였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6일(현지시간) 애플이 미국 상무부를 비롯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들을 상대로 중국산 메모리 칩 구매를 승인해달라는 로비를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 정가에 지원 요청
FT에 따르면 애플은 한 달여 전 미 상무부에 먼저 접촉했으며, 이후 행정부 내 다른 부처와 워싱턴 정가의 우군들을 상대로도 지원을 요청해왔다고 전했다.
애플이 관심을 보이는 중국의 반도체 업체는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애플이 CXMT나 또 다른 중국 메모리 업체인 양쯔메모리(YMTC)의 제품을 구매하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돼 있지 않다. 그러나 미 국방부는 두 회사를 모두 중국군과 연계된 기업으로 판단해 '중국 군사기업' 명단에 포함시켰다. 이 명단은 미국 국가안보를 저해할 우려가 있는 중국 기업들을 대상으로 하며, 법적제재보다는 평판 리스크를 부여하는 성격이 강하다. 일종의 블랙리스트다.
애플이 이처럼 이례적으로 중국 업체 도입을 추진하는 배경에는 급등한 메모리 가격이 있다. 애플은 지난 25일 맥북과 아이패드 가격을 인상했다. 회사는 가격 인상의 이유로 "지속 가능하지 않은 수준까지 오른 메모리 가격"을 들었다. 다른 소비자 전자업체들에 이어 원가 상승분을 소비자 가격에 반영한 것이다.
FT는 애플이 CXMT를 새로운 메모리 공급업체로 확보할 경우 기존 공급업체들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가격 협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애플이 실제 중국산 반도체를 구입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엔비디아의 고성능 AI 반도체인 H200의 중국 판매를 허용했지만, 당시에도 행정부 내부에서는 강한 반대 의견이 제기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미 의회에서는 애플의 움직임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중국 특별위원회 공화당 위원장인 존 물레나르 하원의원은 FT에 "(애플이) 중국 공산당이 핵심 공급망을 장악하려는 계획을 돕는 것은 미국 기술산업과 경제를 동맹국이 아닌 중국에 더욱 의존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고 비판했다.
중소업체는 더 심각
공급망 네트워크가 부족하고 가격 협상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중소 전자업체들 상황은 더 심각하다. CNBC는 27일(현지시간) AI 붐으로 D램 가격이 폭등하고 공급이 부족해지면서 중소 전자업체들이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2024년 설립된 스타트업 모노 테크놀로지스는 올해 초 600달러짜리 라우터 개발 키트 약 1000대를 출하하며 시장의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메모리 가격이 급등하면서 후속 생산 계획이 불투명해졌다. 공동창업자인 토마즈 자만은 다음 생산 물량을 기다리는 고객 1300명으로부터 이미 100달러씩 예약금을 받았지만 생산 여부조차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제품 개발 당시 35달러였던 마이크론의 8GB D램 가격이 현재는 300달러까지 치솟으면서 원가 구조가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액션캠 제조업체 고프로 또한 올해 1분기 말 메모리 가격이 80~115% 급등하면서 사업 지속 가능성에 심각한 위험이 발생했다고 투자자들에게 경고했다. 메모리 공급업체들로부터 자사 제품에 사용되는 메모리 생산량을 줄일 계획이라는 통보받았으며, 이에 따라 향후 판매 전망도 하향 조정했다.
시장조사업체 IDC는 현재 상황을 중소 제조업체들에 "절대적인 생존 위기"라고 진단했다. IDC의 나빌라 포팔 애널리스트는 "100달러 이하 제품을 만드는 중소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업체나 지역 전자업체들은 메모리 자체를 확보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며 "메모리 업체들이 지금은 대형 고객의 주문에만 대응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뉴욕=박신영 특파원 nyusos@hankyung.com